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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필사 筆寫

"신미나" 『부레옥잠』

태뽕이 2023. 5. 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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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부레옥잠』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空房(공방)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볼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솜털 뻗는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참 오랜만에 당신

 

오실 적에는 불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 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귀를 적셔가매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 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맨낯을 보겠네

 

 

 

열대·아열대 아메리카 원산인 부레옥잠은 백합목 물옥잠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연못에 떠다니며 자란다. 밑에 수염뿌리처럼 생긴 잔뿌리들은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몸을 지탱하는 구실을 하며, 잎은 달걀 모양의 원형으로 밝은 녹색에 털이 없고 윤기가 있다. 잎자루는 공 모양으로 부풀어 있는데 그 안에 공기가 들어 있어 표면에 떠 있을 수 있게 한다. 꽃은 8∼9월에 피고 연한 보랏빛이며 밑부분은 통으로 되어 있고 윗부분이 깔때기처럼 퍼진다. 6개의 갈래조각 중에서 위의 것이 가장 크고, 연한 보랏빛 바탕에 황색 점이 있다. 수조에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데 영하로 내려가면 얼어 죽기에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일 년밖에 살지 못한다.

 

신미나의 시 <부레옥잠>은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여성의 월경 때를 ‘부레옥잠’과 연결시켜 꽃이 필 때의 섬세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 행이 한 연으로 된 첫 연 -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에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몸때’란 여성의 월경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은 이 몸때를 ‘비린 낮달’과 교묘하게 겹쳐 놓고 있다. 손톱의 흰 부분이 낮달 빛깔과 흡사하다. 월경 때가 되어 그 부분이 더욱 선명해진 모양인데, 바로 월경을 시각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2연 첫 구절에서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고 하면서 화자는 부레옥잠에 감정을 이입한다. 부레옥잠이 된 화자는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空房(공방) 하나 부풀렸’다고 한다. 바로 부레옥잠의 공기주머니를 ‘空房(공방)’이라 한 것이다. 너를 탐했다는 것은 어쩌면 남녀의 성적 결합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그러니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즉 사랑의 절정에서 서로의 몸에서 체액을 비우고 나면 그 기분은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솜털 뻗는 거’와 같을 것이다. 이 때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몸물’이라니, 몸의 물 바로 체액(體液)이다. 그런 사랑의 행위를 통해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던 것이리라. 여성이 월경을 할 때에는 육체적인 고통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평소보다 몇 배 예민해진다고 한다. 그런 느낌이 부레옥잠의 생태와 어우러진 기막힌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참 오랜만에 당신 / 오실 적에는’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러니 ‘불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다고 한다. 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문 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즉 당신이 와서 부른다고 헤헤거리며 곧바로 뛰쳐나가지는 않을 것이란다. 일종의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이다. 오히려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귀를 적셔가’면서 문 앞에 당도한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런 연후에는 님과 함께 ‘참방이는 뭇 별들 다 품’을 것이요, 그 때에는 ‘저 달의 맨낯을 보겠’단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리라.

 

알고 있듯이 여성은 본능적으로 월경을 하고 이 때에 난자가 생산되며 정자를 찾게 된다. 그런 과정을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 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다고 한 것이다. 어느 시인은 이를 ‘생명에 대한 여성적 상상력으로 넘치는 매력적인 표현’이라 했는데, 구구절절이 월경을 한 여성의 생리적 현상 혹은 본능적 성욕이 부레옥잠의 생태와 겹쳐지며 만들어낸 표현들이다. 이를 굳이 비유와 은유란 말을 써가며 어렵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맞는 여성들만의 행사, 몸때에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기묘한 현상이 부레옥잠의 생태와 하나가 되어 ‘당신’을 기다려 맞으며 함께 사랑을 불태우는 모습이 참 멋들어지게 표현되어 있지 않은가. ‘부레옥잠’을 보며 어찌 이런 상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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