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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필사 筆寫

"프랭크 오코너 Frank O'connor" 『주정뱅이 The Drunkard』

태뽕이 2024. 6. 2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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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오코너 Frank  O'connor

* 아일랜드 소설가.  아일랜드의 소박한 생활을 풍부한 유머와 세련된 필치로 그렸다.  예이츠로 부터  "체호프가 러시아에서 해낸 일을 아일랜드에서 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아일랜드 혁명전쟁의 비참한 이야기를 사실적 수법으로 그린 <국민의 손님> 등이 있다. (1903~1966)

 

 

주정뱅이  The Drunkard

 

 둘리 씨가 죽었을 때 아버지는 매우 심한 충격을 받았다.  둘리 씨는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었다. 그리고 도미니칸스에  아들 두명과 차를 한 대 갖고 있었다.  그는 사교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몇 수나 앞서 있었지만 겸손해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둘리 씨는 지성인이었고, 모든 지성인들이 그러하듯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어  지적인 말상대를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 둘리씨는 남달리 지적인 사람이었다.  장사차 만나는 사람들이나 성직자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는 마을에서 일어

 

나는 일은 모두 알고 있었으며,  저녁마다 길을 건너 우리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에게 뉴스 뒤에 숨은 진짜 뉴스를 전해 주었다.   그는 나지막하고 상담하기에 딱 어울리는 음성과 누구에게나 친밀한 미소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그가 계속 얘기할 수 있도록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얼굴이 상기된 채 멋 모르는 어머니에게 여보란 듯이 다가가 "둘리 씨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알고 있소?"라고 물어보곤 하였다.  그후 나는 누군가가 내게 비공식적인 정보를 들려 줄 때마다 " 혹시 그 얘기 둘리 씨로부터 들은 것 아닙니까?" 하고 물어보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나는 그가 납빛 손가락 사이로 로사리오를 감은 채 갈색 수의를 입고  입관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의 죽음을 실감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고,  어느 여름날 저녁 둘리 씨는 다시 우리집 현관에 모습을 드러내어 다음 세계의 내막을 들려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는 달랐다.  아버지는 매우 당혹해하였다. 아마 아버지와 둘리 씨가 거의 동갑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갑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 죽으면 남의 일같이 느낄 수 없도록 만드는 법이니까.  아니면 아버지는 이제 회사에서 최근 발생한 사건 뒤에 어떠한 부정이 있었는지 알려 줄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불라니 레인에게 둘리 씨만큼 신문을 읽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찮은 목수에 불과한 설리반도 자신이 아버지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분명 사건 중의 하나였다.

 

 "커라에서 두 시 반이군"

 아버지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하지만, 당신 장례식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요?"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내가 갈 걸로 모두들 알고 있을 거야"

 어머니가 말리려는 기미를 알아챈 듯 말했다.

 "그들과는 얘기하지 않을 거구"

 어머니가 자신의 감정을 누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엔 누구라도 당신처럼 그와 함께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예배를 보러 간다는 것도 문제였다.  시체는 일과가 끝난 뒤에 운구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반나절 품삯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아는 척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덧붙였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온갖 해악害惡 사이에 계시니까,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오"

 아버지는 위엄있게 말했다.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언제나 좋은 이웃을 해서는 반나절 품삯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장례식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웃을 돕는다는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여 훌륭한 장례식을 보장받는 것만큼 그에게 위안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그녀는 결코 반나절 품삯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에게 그만한 여유는 있었으니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음주벽은 아버지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아버지는 한번 마음먹으면 몇달이고, 몇년이고 참아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는  비할 데 없이 선량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식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침대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에게 차를 한잔 끓여다 주었으며, 저녁마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신문을 보았다.  돈을 조금 모아서 새로운 청색 사지 양복도 한 벌 사고 중산모도 하나 샀다.  그리고 일조일도 빼놓지 않고 힘들여 번 돈을 술집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도 하였다.  때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연필과 종이를 꺼내놓고 자신이 절대금주자의 생활을 통해 얼마나 저축했는지를 계산해 보았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엇기 때문에 아버지는 때때로 남은 여생동안 얼마나 저축할 수 있을 것인가도 계산해 보았다. 그 총액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수백 달러는 족히 남을 것이었다. 

 

 내가 그때 눈치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정신적인 자만심에 빠져있었으며 자신이 이웃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기 시작햇다. 조만간 그러한 정신적인 자만심은 커질 대로 커져 축하행사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물론 위스키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위스키 종류 대신에 맥주 같은 해가 별로 없는 술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선량한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첫 술잔을 입에 대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자신을 기만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잊기 위해 두 번째 술잔을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잊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세 번째 잔을 들었고  마침  내 술에 곤드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 이후는 주정뱅이의 과정이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일터에 나가지 못했다.  술 때문이었다. 대신 어머니가 일터에 나가 아버지 대신 사과하였다. 그리고 그 뒤 2 주일간 일터에 나가지 않는 사이, 아버지는 처량하고 난폭하며 풀이 죽은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일단 술을 입에 대자 아버지는 부엌에 걸린 벽시계까지 팔아 치우면서 술을 마셔댔다.   나와 어머니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날에 닥칠 재앙에 공포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례식도 그 중 하나였다.

 

 "던피 씨 집에 가서 반나절쯤 할 일이 있는지 알아 보아야겠어요"

 어머니가 탄식하듯 말했다.

 "래리는 누가 돌보지요?"

 "내가 래리를 돌봐줄게"

 아버지가 선심쓰듯 대답했다.

 "조금 걷게 만들기만 해도 될테니까"

 

 나를 따로 돌볼 사람은 필요없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 남아 동생 쏘니를 잘 돌볼 수 있다는 것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음주를 막을 가족으로서의 일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막아 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버지는 나와 아버지를 위해  차 두 잔을 끓여 내왔다.  아버지는 차를 끓이는 데에는 훌륭했으나 다른 일에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빵을 자르는 모습만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차를 마신 뒤 아버지와 나는 언덕 아래 교회로 갔다.  아버지는 가장 아끼는 청색 사지 양복을 입고 중산모를 약간 삐뚜름하게 쓰고 있었으나 술주정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조문객들 중에  피터 크로울리가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하셨다.  피터는 또다른 위험 인물이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 미사 후에 겪었던 경험을 통해서 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는 공짜술을 얻어 먹기 위해 장례식을 찾아다니는 비열한 사나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둘리 씨가 누가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약할 줄 모르고 버는 돈을 모두 술집에 갖다 바치는 바보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경멸투의 관심을 갖고 대해 왔다.  그러나 피터 크로울리는 자신의 돈을 거의 낭비하는 버비 없었다.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둘리 씨의 장례식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오후의 햇빛 아래 우리가 그의 영구차를 따라나서기 전 아버지는 장례식을 눈여겨 보아 두었다.

 

 "운구차가 다섯 대나 되는 군 !"

 아버지는 탄복하듯 말했다.

 "다섯 대의 운구차하고 열 여섯대의 유개차라 !" 시의회 의원도 한 사람 와 있고, 고문관이 두 사람씩이나 참석하다니.  사제들은 헤아릴 수도 없고... 술집 주인 윌리 맥의 장례식 이후로 거리에서 이런 장례식을 보긴 처음인걸"

 아, 그야 그 친구가 인심을 많이 얻었기 때문이지"

 크로울리가 쉰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기랄, 그걸 누가 모르나?"

 아버지가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 친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  죽기 이틀 전날 밤 ------- 바로 이틀전에, 그 친구 우리집에 놀러와 주택청부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회사에 근무한느 녀석들은 밤이고 낮이고 도둑질만 해댄다고 말이야. 그러나 그 친구 그렇게 발이 넓은 줄은 몰랐지"

 아버지는 만사가 다 기분좋은 듯이 어린애처럼 걸어나왔다. 아버지는 모든 조문객들이나 선데이즈 웰을 따라 늘어선 훌륭한 집들을 보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때 위험 신호가 강력하게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화창한 날씨, 멋진 장례식, 이름 있는 성직자들과 공무원들,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성격 속에 내재해 있던 경솔함과 허영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오랜 친구가 무덤 속에 안치되는 것을 어떤 진정한 기쁨을 느끼며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느끼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기나긴 여름날 밤 둘리 씨를 무척 보고 싶어할 테지만 친구를 그리워할 사람이 둘리 씨가 아니라 자신일 것이라는  사실도 그에게는 즐겁게 느껴지는 것같았다.

 

 "저들보다 먼저 떠나야겠지"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 첫삽으로 진흙을 퍼서 둘리 씨의 관 위에 뿌리자 아버지는 크로울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풀무덤 위를 염소가 뛰듯 껑충껑충 뛰면서 그자리를 물러나왔다.  몇달 동안이나 술을 끊고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아마 아버지와 같은 상태에 있었을 운전사들이 기대 어린 눈초리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끝나갑니까, 딕?"

 "마지만 기도만 남았소"

 아버지의 대답은 환희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운구차들이 술집으로부터 수백 야드 떨어진 곳에서 거품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뜨거운 날씨만 되면 아픔을 느끼는 발 때문인지 아버지는 어깨 너머로 조문객 일행이 언덕 너머로 보이지 않은가, 신경질적으로 뒤돌아 보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 일행이 있었다면 혼자 떠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선술집에 도착해보니, 운구차들이 술집 앞에 멈추어 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타이를 맨 근엄한 표정의 남자들이 휘장이 쳐진 차창 밖으로 얌전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신비의 여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술집 안에는 운전사들과 숄을 두른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막으려면 이때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아버지의 상의 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버지, 지금 집에 돌아가지요"

 나는 아버지 코트자락을 다시 잡아당기며 말했다.

 "2분이면 된다"

 아버지는 애정어린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달랬다.

 "레모네이드 딱 한 병만 마시고 집으로 가는거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유약한 성격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뇌물로 나에게 레모네이드를 시켜 주었고  2 파인드의 흑맥주를 시켰다.  목이 말랐던 나는 단숨에 레모네이드를 마셔 버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술을 끊은 적이 있었고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무한한 기븜을 가진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파이프를 꺼내더니 한번 불어 본 다음 파이프 담배를 채운 뒤 커다랗게  빠끔 소리를 내며 담배 불을 붙였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등을 돌려 마치 등 뒤에 맥주잔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카춘터 위에 팔꿈치를 기대고 천천히 손바닥 위에 묻은 담배가루를 쓸어냈다.  아버지는 저녁때까지 앉아 있을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참석했던 장례식 때마다  끈질기게 끝장을 보아왔었다.  운구차는 떠나갔다.  그리고 친족 이외의 조문객이 술집 안으로 밀려들어와 반쯤 차게 되었다.

 

 "아버지, 이제 집에 가지요"

 나는 아버지의 코트자락을 다시 잡아당기며 애원했다.

  "아, 아직 네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려면 한참 멀었다"

 아버지는 다소 자애스럽게 나를 타일렀다.

 "길가에 나가 놀기나 하렴"

 

 내가 낯선 거리에서 혼자 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아버지의 처사가 냉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전처럼 다시 따분해지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해가 질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은 술이 떡이 된 아버지를 끌고 집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불라니 레인 거리를 걷는 동안 모든 여자들이  "믹 멜라니가 또 저 지경이 됐군"하며 수군댈 것임을 또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걱정과 함께 무척 화를 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음날이면 아버지는 일터에 나가지 않겠지.  그리고 주말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는 숄 밑에 시계를 감추고 전당포를 찾게 되겠지.  시계가 없는 쓸쓸한 부엌은 내겐 무척 볼썽 사나운 것인데...

 

  나는 아직도 목이 말랐다. 그리고 까치발을 디디면 아버지의 맥주잔까지 손을 뻗힐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잔속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있으니까  내가 술잔에 손을 뻗어도 모를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술잔을 끌어내려 조심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무척 실망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그런 것을 마실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왔다.  아버지는 레모네이드같이 맛있는 음료수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레모네이드 맛이 어떤지 말해 주려 했지만 아버지는 얘기에 열중해 있었다.  아버지는 장례식 때 밴드를 부른 것이 정말 멋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장총을 거꾸로 잡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여  쇼팽의 장례식 마치 몇 소절을 흉내내었다.   크로울리가 경건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조금 더 마셨다.  그리고 흑 맥주도 나름대로 유익한 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묘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샤무엘이 나오는 장송곡 몇 소절을 흉내냈다.   술집도 멋있고 장례식도 훌륭하다고 느껴졌다.  천국에 간 둘리 씨도 몹시 기뻐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사람들이 그를 위한 연주를 밴드에게 부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밴드는 장례식에 훌륭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흑맥주가 대단한 것이라는 까닭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잊게 하고, 아니 구름 위를 떠다니는 천둥처럼 높이 떠있게 만들고, 다리를 꼰 채 술집 카운터에 기대어 사소한 일들은 다 떨쳐버리고  삶과 죽음에 관하여 깊고 진지하고 원숙한 사색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되돌아 보노라면 누구라도 잠시 후 자신이 얼마나 우스쾅스럽게 보이는지 깨닫게 되고 갑자기 당황하게 되어 킥킥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이미 그러한 단계는 지나가 버린 뒤였다.  나는 술잔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은 것이 무척 어렵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카운터가 갑자기 높아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우울감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부디, ... 주여, 어디에 가 있든 그 친구의 영혼이 평온히 잠들게 해주옵소서"

 아버지는 등 뒤로 술잔을 찾아 팔을 뻗으면서 경건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멈칫했다.  처음에는 잔을 쳐다보더니 한동안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여보시오"

 아버지는 불쾌한 감정을 숨긴 채,  단지 농담 한 마디 던진다는 식으로 상당히 명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가 여기에다 손을 댔소?"

 술집 주인과 여자들이 아버지를 쳐다보고, 다시 그의 술잔을 바라보는 순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기 손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이 양반아"

 한 여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굴 강도로 보는거요?"

 "아, 그런 짓 할 사람은 아무도 없네, 믹"

 술집 주인도 놀라움이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손을 대긴 댔지"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럴만한 사람이라면, 술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일테지"

 

 조금 전에 말했던 여자가 내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험악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도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건데,  나는 다소 꿈꾸는 듯한 눈빛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고 나를 잡아 흔들며 묻기 시작했다.

 

 "너 괜찮으냐, 래리?"

 피터 크로울리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고 있었다.

 "이겨낼 수 있겠니?"

 크로울리는 그 쉰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이겨낼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나는 토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장 아끼는 양복이 더렵혀질까 봐 훌쩍 뒤로 물러나 성급히 뒷문을 열었다.

 "뛰어, 뛰어, 뛰어 봐"

 아버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밖에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담장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뛰었다.  의도는 좋았으나 연기가 너무 과장되어 버렸다.  나는 바로 그 벽을 들이받아 아픔을 주고 말았다.  나는 벽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제나 공손한 아이로 알려진 나는 다시 속이 울렁거려 토하기 전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옷을 버릴까 봐 조심하면서 내가 토하는 동안 몸을 잡아 주었다. 

 "자, 그렇지 " 아버지는 힘내라는 투로 말했다.

 "토해 버려야 장한 사람이지"

 

 천만에, 나는 장한 사람은 못됐다.  장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부축하여 다시 술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숄을 걸친 여자들 곁에 있는 긴의자에 앉혀주었을 때 나는 큰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비의 술잔에 손을 대지 않았는가 으심을 받았던 것에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여자들은 냉랭한 태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원, 세상에"

 한 여자가 안스럽게 나를 내려다보면서 볼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런 사람이 아버지랄 수 있겠어요?"

 "믹"

 

 술집 주인은 내가 걸어들어온 자리에 톱밥을 뿌리면서 걱정스러운 듯 아버지를 불렀다.

 "저애가 이곳에 출입해서는 안되네. 순경이 보기 전에 어서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걸세"

 "오, 하느님"

 

 아버지는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눈길을 하늘로 향하고 조용히 손바닥을 마추치며 우는 소리를 했다.

 "이 무슨 불상사입니까?  저 애 어머니는 무어라고 말할까요?  여자들이 집에 남아 애들이나 돌보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을텐데..."

 

 아버지는 숄을 둘러쓴 여자들보고 들으라는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빌, 운구차들 벌써 다 떠났나?"

 "그 차들 오래전에 볼일을 다 끝냈다네, 믹"

 술집 주인이 대꾸했다.

"집에 데리고 가야겠네"

아버지는 단념하듯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너를 데리고 오지 않겠다"

 이렇게 협박조로 내게 말한 아버지는,  "엣다, 여기 손수건이 있으니 눈가에 대고 있어라"라고 말하며 상의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손수건에서 피가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관자놀이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조용히"

 아버지는 나를 문 밖으로 떼밀면서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들이 네가 죽기라도 한 것으로 알겠다.  별것 아니니 어서 집에 가서 씻도록 하자"

 "똑바로 걷거라, 이 녀석아"

 크로울리가 내 다른 한쪽을 부축해 주며 말했다.

 "곧 괜찮아질 거야"

 

 나는 두 사람처럼 술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갑자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햇빛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면서 더욱더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바람결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시 우는 소리를 내었다.

 "전능하신 주여, 앞이 캄캄하나이다. 무슨 불상사가 이렇습니까?  똑바로 걸을 수 없겠니?"

 

 나는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블라니 레인에 사는 모든 늙고 젊은 여자들이 햇빛에 이끌려 반쯤 열린 문가에 기대어 서 있거나 현관 계단에 나와 앉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던 잡담을 멈춘 채, 눈 위에 상처를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어린아이를 말짱한 두 중년 남자들이 집으로 끌고 가는 이상한 광경을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나를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 창피를 면하고 싶으나,  내가 취한 것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웃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고 싶은 갈등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버지는 로체 부인 집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길 반대편 집 문 밖에는  늙은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인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내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로체 부인 집 벽에 몸을 기댄 채 커라의 차가운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불쌍한 둘리 씨를 생각해 보고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그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감정을 넣어 부르기 시작했다.

 

   외로운 모노니아 무덤 속은 비록 추워도

   그는 다시 킹코라에 돌아오지 않도다.

 "어머나, 저 애 좀 봐"

 로체 부인이 말을 꺼냈다.

 "목소리도 참 곱군. 신의 가호를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닥쳐" 라고 소리치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야단을 칠 때 나는 더욱 놀랐다.  아버지는 내 노래가 매우 어울리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닥치라고 했잖아 !"

 아버지는 다시 큰 소리로 꾸짖고는 로체 부인을 의식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애썼다. 

 "이제 집에 다 왔다.  내가 집까지 업고 가마"

 그러나 비록 몹시 취하기는 했어도 그렇게 불쌍하게 집까지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저를 혼자 놔두세요"

 

 나는 단호하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똑바로 걸을 수 있다구요. 단지 좀 쉬고 싶을 뿐이예요"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쉬면 돼"

 아버지는 나를 붙잡으려 하면서 악을 쓰듯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몹시 벌개진 것을 보고 나는 아버지가 무척 당황해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 참"

 나는 짖궂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제발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길 건너편에 있던 여자들은 이러한 광경이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넋이 빠지도록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술을 마실 바에야 온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서 놀려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나의 가슴 속에는 허황된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도데체 누굴  보고 웃는 거야? "

 나는 그들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소리쳤다.

 "만약 내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너희들 다른 쪽 낯짝을 비웃게 만들어 줄 테다"

 

 그러나 그들은 더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교양머리 없는 인간들은 처음 보았다.

 "썩 꺼져버려, 이  빌어먹을 망할 년들 !"

 "닥쳐, 닥쳐, 닥치라고 했잖아 !"

 아버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흥겨워하던 표정을 지워 버리고 손목을 잡아끌며 사납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여자들이 깔깔 웃어대는 소리에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도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발뒤꿈치로 땅을 파서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댔으나 아버지의 힘이 워낙 세었다.  나는 어깨 너머로 깔깔대고 웃어대는 여자들을  쳐다볼 수 있을 뿐이었다. 

 

 "조심해,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아와 본때를 보여줄 거야"

 "내 너희들에게 점잖은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는 예절을 가르쳐주마.  너희들 집에 처박혀서 더러운 낯짝이나 깨끗하게 씻는 것이 더 나을 거다"
 "온 동네가 다 듣겠다"

 아버지는 거의 울상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보나 봐라. 다시는 절대로 이런 일을 없게 하리라. 천 살까지 살더라도 절대 없을 거야"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나를  다시는 데리고 다니지 않겠다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갈 때 나는 영웅적인 기분에 취하여 <웩스포드의 아이들> 이라는 노래늘 소리 높이 불렀다.   온전한 대접은 못 받으리라는 것을 안 크로울리는 얼른 집에서 도망을 쳐버리고, 아버지는 나의 옷을 벗긴 뒤 침대에 눕혔다.  머리가 띵했던 나는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분이 몹시 불쾌했고 또 다시 나는 토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천조각을 물에 적셔, 내가 토하는 것을 닦아냈다.  나는 열에 휩싸여 누운 채 불을 지피기 위해 아버지가 나무를 쪼개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식탁을 꾸미는 소리도 들었다.

 

 갑자기 앞문이 꽈당 하고 열리더니 어머니가 쏘니를 안고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어머니는 평상시와는 달리,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 아니라 험악하고 격노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웃사람들로부터 모든 얘기를 들었음에 틀림없었다.

 

 "믹 델라니, 애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어머니는 히스테리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여보, 조용, 조용히 해"

 아버지는 옆걸음질을하며 어머니에게 입을 다물 것을 부탁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겠소"

 " 아하"

 어머니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아마 지금쯤이면  온 동네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불쌍하고 죄없는 아이에게 술을 먹여 갖고,  당신과 또다른 썩어빠진 더러운 놈팽이가 함께 즐거워했다는 걸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애 한테 술을 준 적은 없다구"

 아버지는 이웃사람들이 그의 불행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했다. 

 "내가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저애가 술을 마신거라구요. 도데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거야?"

 "아하"

 어머니도 씁쓸한 어조로 대꾸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 모두 알게 되었다구요. 애써서 번 돈을 모두 술집에 소스란히 갖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자식을 자신처럼 술취한 건달로 키우다니...!"

 

 

 그리고 어머니는 침실로 뛰어들어와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눈가의 상처를 보자 한탄을 했다.   부엌에서는 쏘니가 혼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가 얼굴에 자기 연민의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덮을 정도로 모자를 눌러쓰고 침실 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이러쿵저러쿵 잘도 지껄이는군"

 아버지의 말소리는 푸념조였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니, 그것 참 재미있는 비난이군. 하루 종일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았다구.  저 녀석이 다 마셔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마셨다는 것인지... 동정을 받을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오. 기분 좋은 하루를 다 망치고 온 동네의 구경거리가 되었으니 말이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들고 일터로 나가자, 어머니는 침실로 들어와 내게 키스해 주었다. 모든 일이 다 내 공인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눈가의 상처가 나을 때 까지 휴가가 주어졌다.

 "오, 옹감한 내 아들 !"

 어머니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네가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간 것은 주님의 뜻이었어.  너는 아버지를 수호하는 천사였지..." (끝)

 *출처: https://blog.naver.com/clementain23/10000949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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