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는 공간입니다.』

【영어과외】【취직·이직 멘토링】【커리어 컨설팅(경력개발)】 진행합니다. carriver77@naver.com

Self-Development/논리 & 논술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라고 불리는 순환논법

태뽕이 2023. 9. 5. 22:47
728x90
SMALL

아직 고유의 명칭이 없어서 그저 비근한 직접적 비유를 통해 묘사해야 하는 보편적인 개념에 관해 논쟁이 벌어진다면, 내 주장을 펼치는 데 유리한 비유를 재빨리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볼까. 스페인에는 두 개의 정당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다. ‘노예당serviles’과 ‘자유당liberales’이 그것인데, 이런 이름을 선택한 것은 틀림없이 후자, 즉, 자유당이었을 테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그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이고, ‘복음주의자’라는 이름 역시 복음주의자들 자신이 고른 명칭이다. 그러나 ‘이단異端’이라는 이름은 가톨릭교도들이 선택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지칭하는 이름에도 해당한다. 예컨대, 나와 논쟁을 벌이는 상대방이 무언가 ‘변화’를 제안했다면, 나는 그것을 ‘혁신’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혁신이라는 표현은 앙심이라도 품은 듯 악의적이기 때문이다(쇼펜하우어가 활동했던 시기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이었음을 고려하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 옮긴이). 

자, 그럼 상황이 바뀌어 내가 무언가를 제안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첫 번째 경우, 즉 ‘변화’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현존하는 질서’라고 말하며, 두 번째 경우, 즉 혁신에 대해서는 ‘복스보이텔’이라고 말해야 한다(복스보이텔Bocksbeutel은 독일 프랑켄 지방의 와인을 담는 독특한 형태의 병을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동시에 이 합성어를 풀어보면 ‘숫양의 불알’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므로, 상대방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의미도 담겨 있다 ─ 옮긴이). 

아무런 의도를 갖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 ‘숭배’라든지 ‘공적인 교리’ 등으로 부르려는 것을 두고, 그것을 옹호하려는 사람은 ‘깊은 신앙심’이라든가 ‘경건함’이라 부르지만, 그것에 대해 반대의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은 ‘광신狂信’ 또는 ‘미신’이라 부르기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이 기술은 흔히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라고 불리는 순환논법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즉, 먼저 한 사람이 밝히고자 하는 바를 일단 말로 표현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상대방의 순전히 분석적인 판단을 통해서 그것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의 신변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 혹은 ‘보호해주기’라고 부르는 것을 상대방은 ‘감금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런저런 사물에 붙여주는 명칭을 통해서 처음부터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누군가를 ‘성직자’라고 부르는데, 상대방은 그를 ‘목사 나부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논쟁의 기술 가운데 이 기술이 가장 흔히 사용된다. 거의 본능적이라고나 할까.  


종교적인 열정 → 광적인 신앙심.
잠깐의 실수, 여자에 대한 남자의 정중한 관심 → 간통. 
부적절한 말 → 음담패설. 
재정적 혼란 → 파산. 
영향력과 연고를 활용해서 → 뇌물과 정실情實을 이용해서. 
넉넉한 대가 → 진심에서 우러난 고마움.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