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는 공간입니다.』

【영어과외】【취직·이직 멘토링】【커리어 컨설팅(경력개발)】 진행합니다. carriver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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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물산』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이고 개나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다 "슬픈 개는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행복한 개는 오른쪽으로 흔든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개의 꼬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공원에서, 학교에서, 주택가에서 홀로 걷는 개들과 목줄을 매고 걷는 개들 언제부턴가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줄 알고, 무엇이 슬픈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얼떨결에 밥을 주고,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개는 자주 오른쪽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왼쪽으로 흔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꼬리와 온종일 걸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의 밤, 잠들어 있는 개를 보았는데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도 ..

"허수경" 『내 손을 잡아줄래요?』

어느 날 보았습니다 먼 나라의 실험실에서 생의학자가 내가 가진 인간에 대한 기억을 쥐가 가진 쥐의 기억 안에 집어넣는 것을 나와 쥐는 이제 기억의 공동체입니다 하긴 쥐와 나는 같은 별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사랑을 할 때 어떤 손금으로 상대방을 안는지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지요 쥐의 당신과 나의 당신은 어쩌면 같은 물음을 우리에게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손을 잡아줄래요? 피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잡아주시면 됩니다 쥐의 당신이 언젠가 떠났다가 불쑥 돌아와서는 먼 대륙에서 거대한 목재처럼 번식하는 고사리에 대해서 말을 할 때 나의 당신은 시간이 사라져버린 그리고 재즈의 흐느낌만 남은 박물관에 대해서 말할지도 모릅니다 쥐의 당신이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는 유행가를 부르며 가을 ..

"신두호" 『지구촌​』

햇빛 속을 걸었어 정오를 지나 지구인의 심정으로 이곳의 대기는 나의 신체에 적합하지 않다. 호흡기계통에 무리를 느끼며 햋빛이란 뭘까? 일자를 떠올려도 빛나는 건 없었어 존재란 잘 구워진 빵과 같아서 신체가 주어지면 영혼은 곧 부드럽게 스며들 텐데 버터가 녹아들듯이 열기가 필요할 거야 태양이 일종의 장소라고 믿는다면 뿜어져나오는 광선을 햇빛이라고 부른다면 신체와 영혼을 구원하는 오븐이라는 불길한 일기예보는 어제를 잊어가며 계속되겠지 지구 곳곳에선 동식물들이 자라나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동시대적인 눈들 처음으로 종이 울리겠지만 솟아오르는 로켓을 보면 언제나 우울해져 모든 것을 남겨두고 지구를 벗어나려 빛을 떠안고 있을 때 영을 센 이후에 시작된 것들은 여전히 영을 믿고 있겠지 접었던 손가락들을 펼치며 대기권으..

"안도현"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김종길" 『성탄제(聖誕祭)』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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